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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성적표
12월의 캠퍼스는 학기말고사로 차분하면서도 시험 준비로 분주하다. 우리학교의 학업 성적 평가 제도는 1975년을 기점으로 정착되어져 왔다. 문교부는 1972년 실험대학을 선정하여 대학교육의 개혁을 실험적으로 실시하도록 하였다. 새로운 시대의 이념에 알맞은 대학 기능 발휘와 시대적 사명과 사회적 요청에 부응하도록 대학 교육을 정립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우리학교는 고려대학교, 부산대학교, 전남대학교, 서강대학교 등의 뒤를 이어 1973년 10월 31일부터 실험대학에 선정되기 위해 준비하였고 1974년 선정되었다. 당시 27개 학과 중 의예과, 간호학과, 의학과, 체육학과를 제외한 학과에서 실시되었다. 실험대학 운영으로 기존 제도들의 개혁이 시작되었다. 이 가운데 학업 성적 평가제도는 1975년 3월 14일자로 다음과 같이 개정되었다. ① 6등급제에서 9등급제로 개정하여 학사경고 제도와 능력별 졸업 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다. ② 평점제도를 9등급 표시 평점 제도로 전환한다. A+(95-100) A0(90-94) B+(85-89) B0(80-84) C+(75-79) C0(70-74) D+(65-69) D0(60-64) F(0-59) ③ 시험은 한 학기당 3회 이상 과하도록 의무화한다. ④ 평점은 시험 성적 80%, 과제물 20%로써 종합 평가한다. 특히 네 번째 항목의 영향으로 이때부터 중간시험 30%, 기말시험 50%로 하고 과제 성적을 20%로 하는 학업 성적 평가 제도가 생겨났다. 또한 당시 제6대 총장을 역임하고 있던 박희범 총장은 한 개 반의 성적 산출 비율을 A 학점자 10%, B학점자 20%, C학점자 40%, D학점자 20%, E,F학점자 10%라는 정상분포곡선 방식을 적용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는 상대평가로 학생들의 학구열을 높이는 결과를 보였다. 이렇게 마련된 학업 성적 평가제도는 ‘성적등릅별 분포비율’ 기준으로 지금도 실행되고 있다. 물론 전공과목, 교직과목 등 몇몇 과목에 대해서는 상대평가의 기준을 적용하지 않기도 한다.
11
작성자
충남대학교 박물관
작성일
21.05.07
조회수
568
10
[11월] 총학생회선거
11월의 캠퍼스에는 늦가을 차가운 바람과 함께 선거 바람이 불어온다. 총학생회의 임기는 해당 년도 1월부터 12월까지이므로 11월에 다음연도의 총학생회장 및 부회장, 그리고 각 단과대학 학생회장과 부회장을 선출한다. 물론 이 선거일시는 선거임기 및 학사일정을 고려한 관례적인 것이다. 초기 60년대와 70년 중반에는 임기가 2학기에서 다음해 1학기로 정해있어 대개 6월에 선출되었다. 우리학교의 총학생회는 1961년 9월 13일 총학생회칙이 통과되면서 구성되었다. 각 단과대학별로만 학생회가 운영되어 학교 전체 학생을 모으는 일에 어려움이 따랐고 본교를 대표할 학생회가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초대 총학생회 선거는 1961년 11월 10일 실시되어 제 1대 회장에 서광훈(농대3년), 부회장에 홍종안(공대2년) 군이 당선되었다. 첫 총학생회 선거였던 만큼 유권자의 총 투표자 1165명 중에서 기권과 무효표가 없는 성과율을 보였다. 이후 점차 학생회장 투표율이 조금 떨어지기도 했으나, 투표율이 유권자 50%를 넘지 못하는 지금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1973년 13대 선거에서는 선거사무소· 현수막· 찬조발언· 참모제를 폐지한 선거운동이 이루어진 특색을 보이기도 했다. 1975년 학도호국단이 창설되며 총학생회는 폐지되었다. 그렇게 6년이 지나고 1980년 3월 총학생회 회칙을 새로 제정하고 4월에 선거를 치루며 총학생회는 부활할 수 있었다. 제15대 총학생회였다. 하지만 부활은 1980년으로 그쳤고 학도호국단 체제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아 무엇보다 학생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학도호국단 문제는 계속 제기되었다. 1985년 드디어 총학생회는 학원자율화조치로 진정한 부활을 할 수 있었다. 1985년 6월 학생회 회칙 개정과 함께 선거가 이루어져 10개 후보가 경쟁하는 가운데 선거가 실시되어 10년간의 공백을 깨고 제 16대 총학생회가 선출되었다. 약 60여년의 기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총학생회 선거에 입후보자들은 당선 향해 실천가능한, 그리고 학생과 학교를 위한 공약과 함께 새로운 홍보방법으로 무장하고 나온다. 반면 일반 학생들의 관심과 투표율이 매년 저조한 상황을 보이며 따라서 11월 선거가 이듬해 재선거가 이루어지는 등의 안타까운 상황이 나타나기도 한다.
9
작성자
충남대학교 박물관
작성일
21.05.07
조회수
535
8
[10월] 학술대동제
10월은 제 2의 축제기간이다. 총학생회의 ‘학술대동제’를 비롯하여 각 단과대학에서 학과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다양한 공연과 전시 ․ 강연 ․ 가요제 등으로 꾸며진 ‘학술제’가 펼치기 때문이다. 행사 주최가 다양한 만큼 기간도, 장소도 9월말에서 10월, 늦게는 11월까지 이어진다. 사실 9월 말에서 10월 동안 진행되는 학술대동제는 80년 초 백마축전과 분리되면서 ‘추계학술제’ ‘추계대학제로’ 출발하였다. 매년 거듭되면서 점차 학술대동제로 자리잡게 되었고, 초청강연회, 토론회, 학과별 전공분야 관련의 발표 및 전시회가 주축을 이루었다. 지금은 이러한 행사와 더불어 공연과 가요제, 기타 이벤트들이 함께 진행되고 있어 더욱 다채로운 학술문화제로 정착되어 왔다. 그렇지만 다소 이러한 이벤트 에 집중한 나머지 각각의 전공을 살린 특성있는 학술제가 되지 못하는 아쉬운 점도 나타난다. 이 가운데에서도 학과별 학술제도 특색있는 학술제 이름 아래 공연과 전시 등 작은 규모의 학술제를 해마다 이어가고 있다. 단과대학이나 학과가 학술대동제의 주인이 되는 만큼 봄의 축제보다도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한 더욱 의미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7
작성자
충남대학교 박물관
작성일
21.05.07
조회수
503
6
[9월] 학술제
여름방학이 끝난 대학은 곳곳에서 ‘시작’ ‘출발’의 물결이 일어난다. 2학기 수업의 시작. 동아리 모임의 신입회원 모집과 전시회․ 발표회의 시작. 그리고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학 및 학과의 학술제도 그 시작을 알려온다. 9월의 캠퍼스는 이렇게 많은 시작을 알리는 홍보물로 넘쳐나기도 하는데, 학교측에서는 9월 한달간을 홍보물게시 자율기간으로 정하기도 한다. 각종 동아리와 학과행사 중 충대방송국의 “CNUBS 방송제”가 그 출발에 선다. CNUBS 방송제는 지금의 충대신문방송사가 충남대학교 방송국으로 출범하였던 1980년에 개최되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아침/점심/저녁 방송으로 익숙한 방송국을 스피커 밖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이고, 그들에게는 방송국을 학내 구성원에게 인정받게 되는 시간이다.
5
작성자
충남대학교 박물관
작성일
21.05.07
조회수
441
4
[8월] 수강신청
8월은 방학이지만 2학기 준비로 분주한 달이기도 하 다. 2학기 준비는 8월 초 수강신청을 시작으로 하여 등록금 납부, 8월 마지막 주 수강신청 확인 및 변경과 함께 개강으로 이어진다. 좋은 강의, 자신에게 맞는 강의를 수강하기 위한 학생들의 노력은 수강신청 기간 시작 전부터 이루어져 개강 후 확인 및 변경기간까지 계속된다. 8월 한 달간, 수강신청과의 싸움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2000년 6월 1일 우리학교는 “통합정보시스템(CHIMES)”을 개통하였다. 이 시스템을 통해 모든 학내의 학사 및 행정업무처리가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이 통합정보시스템을 이용하여 설강 교과목에 대한 정보를 얻고 강의 신청을 하며 성적과 등록 및 장학 등을 관리할 수 있다. 통합정보시스템 구축으로 수강신청은 일대 변혁을 하게 되었다. 1999년까지의 수강신청은 수강편람 책자를 통해 강좌를 확인하고, 신청서를 작성 해당 학과를 찾아다니며 직접 확인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개통되면서 많은 편리함을 주었다. 학교에 직접 오지 않고도 인터넷이 가능한 어느 곳에서든지 설강 교과목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신청을 하고, 신청 현황도 바로바로 확인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편리함 만큼 문제점들은 신청기간마다 등장했다. 시스템 개통 1년 후인 2001년에는 서버 과부하로 인하 접속 불가, 속도느림 등 기술적 문제들이 많았다. 만여명의 학생들이 한꺼번에 접속한데 따른 결과이기도 했다. 2002년도에는 서버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수강신청기간을 학년별, 신입생/재학생별, 과목별(교양/전공)로 나누어 8월초에 2번 실시하기도 했다. 또한 본부가 가지고 있던 수강인원 설정․조정 등의 권한을 설강과목의 해당 학과로 이양하면서 수강신청시 빚어지는 정원관련 문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펼쳤다. 그렇지만 매 학기마다 수강신청에 따른 문제점과 학생들의 불만의 소리가 계속되고 있어 안타까움과 함께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요구된다.
3
작성자
충남대학교 박물관
작성일
21.05.07
조회수
491
2
[7월] 봉사활동
1970~1980년대 우리의 선배들에게 농촌봉사활동은 하계방학의 시작이었다. 특히 이 시기는 정부의 새마을운동과 연계하여 이루어져 문교부에서 하계농촌봉사활동 계획안이 나오고 학교에서 이를 따르기도 하였다. 그런 영향으로 총학생회나 동아리 모임 자체로 이루어지는 지금의 농촌봉사활동과 달리 학교 직원과 교수들의 지도아래 농촌봉사활동이 행해졌다. 6월 달에 봉사 참여 신청을 받아 봉사단(봉사대)을 결성, 현지의 상황 등을 교육받은 뒤 7월 한 달, 길게는 8월 초까지 기간을 나누어 봉사활동을 떠났다. 우리학교에서 봉사활동을 떠난 곳은 천안, 보령, 금산, 대덕(현 대덕구), 공주, 부여, 서산, 서천 등 충남 각지였다. 봉사단은 100여명에서 많을 때는 10개반 400여명에 이르렀는데, 지붕․도로 보수, 우물․변소 소독 등의 노동봉사와 함께 문맹퇴치, 반공 및 안전 교육, 기생충 박멸 계몽과 같은 계몽활동도 전개하였다. 1982년을 기점으로 농촌봉사활동은 보다 다양화 되었다. 즉 학과별 혹은 동아리별 특성을 살려 의과대에서는 무의촌 무료진료를, 수의과대에서는 동물치료를, 법과대에서는 법률계몽 활동 등을 하였다. 종교동아리에서는 사찰 같은 관련 장소를 찾아 봉사활동을 떠났다.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에는 평가회도 열어 다음해를 보다 알차게 준비하고자 하였으며, 신문사에서는 봉사활동 수기 공모도 꾸준히 열었다. 이제는 많은 학생들에게서 농촌봉사활동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총학생회 주최로 농촌봉사활동을 떠나는 지역도 충남 서천에 한정되어있다. 이는 물론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서천지부와 결연을 맺은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예전과는 달리 방학만이 아닌 주말과 휴일 혹은 수업이 없는 날을 활용하여 주변의 시설을 방문하는 보다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
작성자
충남대학교 박물관
작성일
21.05.07
조회수
771
0
[6월] 학기말고사
어느새 학기의 마무리가 시작되는 6월. 학기말고사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1980년대 혼란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학교에는 임시휴교령을 내려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시험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정을 바꾸어가면서 빠지지 않고 시험을 보았다. 그래서일까. 40년 전 우리 선배들의 시험 시간, 도서관에서 시험 공부에 열중한 모습은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1
작성자
충남대학교 박물관
작성일
21.05.07
조회수
451
-2
[5월] 백마축전
우리 대학의 축제 ‘백마축전’은 1975년 10월 18일, 그 막을 열었다 백마축전은 학도호국단(총학생회의 전신)의 주최로 매년 10월에 개막되었었다. 제 1회 백마축전은 1975년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열렸는데, 《행군대회》․《충대의 밤》․《체육대회》로 꾸며졌었다.《충대의 밤》에서는 합창 ․ 연주 ․ 연극이,《체육대회》는 종합체육대회로충대학생 모두가 참여하는 가운데 야구 ․ 배구 ․ 육상 ․ 발야구 ․ 줄다리기 등의 종목을 겨루었다. 1978년 4회 백마축전부터는 탈춤, 농악, 민속제, 그룹사운드 등 예술행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점차 많은 학생들의 다채로운 공연들이 펼쳐지게 되었다. 또한 이 당시는 백마축전의 전야제와 폐막식도 성대하게 치루고 있어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1979년은 개교 27주년을 맞이한 해였는데, 개교기념행사를 확대하는 가운데 백마축전을 함께 개최하였다. 이를 계기로 1981년부터 5월은 백마축전이, 10월은 추계대학제(秋季大學祭) 또는 추계학술제라는 이름의 학술제가 자리하게 되었다. 더불어 체육대회도 축제와 분리되기에 이르렀다. 학술제, 체육대회, 예술행사 및 공연 등 대학 전반의 문화행사를 담당하던 백마축전이 축제 고유의 기능을 담당하기에 이른 것이며 백마축전을 통해 개교기념일을 더욱 알차게 보내게 되었다.
-3
작성자
충남대학교 박물관
작성일
21.05.07
조회수
522
-4
[4월] 벚꽃
충남대 구성원이라면 우리학교 벚꽃길과 벚나무 아래서 찍은 사진은 한 장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4월이면 어김없이 생각나고 찾게 되는 우리학교 명소 중의 하나 벚꽃거리. 우리가 벚나무와 함께 하게 된 때는 보운캠퍼스에서 지금의 대덕캠퍼스로 이전하여 새로운 충남대학의 역사가 열리면서이다. 1978년 본격적인 이전사업이 추진되어 1982년 개교30주년을 맞이함과 동시에 이전 사업도 완료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정비와 캠퍼스의 자연경관 조성사업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리하여 1983년부터 대덕캠퍼스 조경 사업이 시작되었다. 자연 환경의 보존, 인간화된 환경 조성, 시각적 질감이 미적이고 수세(樹勢)가 강한 조경 소재로의 조성, 공급 ․ 유지 관리가 용이한 수종으로의 조성, 본교 보유 수목의 최대한 활용 등이 우리 학교 조경 사업의 기본 방향이었다. 이러한 방향아래 정문과 후문, 강의실 주변, 강의실과 인접해 있는 내정주변, 캠퍼스 내의 실외 활동 공간, 가로수 등으로 구역을 나누고 각 구역에서의 기능에 맞도록 수목을 정하였다. 벚나무는 이 가운데 캠퍼스 내의 실외 활동 공간과 가로수로 선택되어 식재하게 되었다. 실외 활동 공간의 기능을 살릴 수 있고 계절감이 강하였기 때문이다. 벚나무는 캠퍼스 곳곳에 심어져 있다. 그러나 어느 곳 보다도 박물관과 제3후생관으로 들어서는 길목과 정보통신원 앞길에서부터 시작되어 학생생활관 앞 로터리에서 만나 학생생활관 깊숙이까지 이어지는 이곳의 벚꽃을 찾게 된다. 약 900M의 길에는 현재 약 160여 그루의 벚나무가 가로수를 이루고 있다. 그 꽃이 절정에 이르는 때에는 벚꽃 터널이 연상될 정도이다. 우리 학교에 있는 벚나무는 왕벚나무로 20년이 넘은 지금 많이 노쇠하여가고 있지만 아직도 벚꽃은 화려하기만 하다. 4월 말을 시작으로 1년에 3회 회충방제를 뿌리고 고사(枯死)가지를 제거하는 등의 관리가 꾸준히 이루어지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2001년부터는 벚꽃개화시기에 맞추어 박물관 주관의 벚꽃축제(현 꽃길축제)가 열리고 있다. 벚꽃 특별전, 영화제와 음악회를 비롯한 각종 공연, 시화전 ․ 회화전 등의 전시회, 도예시연, 캐리커쳐와 같은 다양한 이벤트가 박물관과 벚꽃거리 곳곳에서 펼쳐진다. 이러한 문화행사는 벚꽃구경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어 우리 대학 구성원 뿐 아니라 지역시민들의 발걸음도 재촉하고 있다. 20여년을 충대인과 함께 한 벚나무와 벚꽃. 계속적인 관리와 관심으로 더 오랫동안 많은사람들의 기억 속에 함께 하길 기대한다.
-5
작성자
충남대학교 박물관
작성일
21.05.07
조회수
478
-6
[3월] 학생증
새 학기를 맞이하는 만큼 학생들에게 3월은 더욱 의미는 달이다. 학기 준비를 하면서 확인하는 것 중 하나는 학생증. 현재 소장하고 있는 학생증과 기록 그리고 졸업생 및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우리학교에서 발급되었던 학생증의 종류는 다양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학생증이 교체되던 시기에는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의 혼용기가 있어 복잡하기까지 하다. 학생증의 소재, 형태, 색깔 등 외형적인 부분에서부터 학생증에 적힌 표기사항, 사진 ․ 로고 등의 위치 또한 바뀌면서 학생증은 계속 변화하여 갔다. 외형적인 모습으로 학생증을 확인해보면 종이 ․ 수첩 ․ 코팅 ․ 카드의 네 가지가 있었고, 같은 종류의 학생증이었다 하더라도 학년이나 단대별로 다른 색깔의 학생증이 발급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학생증의 외형 변화는 학생증이 새로운 기능을 포함하면서 일어나기도 하였다. 초기 학생증은 순수하게 학생임을 증명해주는데 있었지만, 다음으로 도서관 이용관련 기능이 추가 되었다. 즉 도서관 증축 및 발전과 함께 도서관 출입시 제시해야 했고, 도서 대출시에도 필요했다. 이 역할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1998년 학생증이 카드형인 MS 마그네틱 학생증으로 바뀌면서는 보다 새로운 기능을 갖게 되었다. 이는 학교와 하나은행과의 협약을 통해 시작된 것으로 학생증이 현금자동입지급기와 직불카드가맹점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개인별 고유 바코드가 부여됨에 따라 도서대출시 더욱 편리해졌다. 그리고 2006년. 2005년부터 콤비칩 스마트카드로 전환되며 학생증은 이제 “다기능학생증”이 되었다. 무엇보다 다기능학생증은 전자화폐의 기능을 가지고 있어 학교 내 식당, 자동판매기 그리고 시내버스요금까지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신청자에 한하여는 국제학생증 기능도 사용할 수 있으며, 아직은 실행되지 않고 있으나 강의실 출결관리와 각 단과대 출입통제까지도 가능할 수 있다고 한다. 학생증은 이제 단순한 신분증 기능을 넘어 학교와 학생에게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학생증 변화된 아래의 학생증들을 유심히 보면 기록 형식과 내용은 물론이고 확인 도장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이 바뀌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특히 “유의사항”은 그 때의 학생 생활상을 보여줄 것이다.
-7
작성자
충남대학교 박물관
작성일
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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